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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문학] 「철학자와 달리기」

미림 :-) 발행일 : 20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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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철학자와 달리기]

 
철학자와 달리기
저자 마크 롤랜즈는 달리는 철학자이다. 그는 여기저기 고장 난 중년의 육체를 이끌고 42.195km의 마라톤을 달리기 시작한다. 그동안 거의 전 생애에 거쳐 달리고 달렸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가장 처음에는 거대한 몸집의 래브라도 리트리버인 부츠와 함께 딱히 특별한 이유도 없이 뛰었다. 아이나 개는 꼭 이유가 있어야 뛰는 게 아니니까. 그 다음 어른이 된 후에는 혈기 넘치는 늑대 형제 브레닌으로부터 집안의 모든 물건이 깨부수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독일 셰퍼드와 말라뮤트의 잡종인 니나와, 브레닌의 딸인 테스까지 이 달리기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 말없는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바닷가로, 정글로 달리며 달리기의 고유한 리듬과 심장박동을 느낀다. 그리고 달리고 또 달려 생각이 마침내 사유로 전환되는 곳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발견했다. 그는 이 모든 깨달음과 발견을 사르트르, 하이데거,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의 사유에 대입하여 사색하고 성찰한다. 이제 그에게 달리기란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허물어져 가는 육신을 진정한 자유와 환희로 안내하는 방법이다. 저자는 달려야 할 운명을 가진 엉덩이 큰 영장류의 불행에 대해 토로하면서도 달리기의 목적은 그저 달리기 위함에 있음을 발견한다. 달리기에서 발견하는 자유 역시 원하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종류의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종류의 자유로부터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 깨달을 때 오는 자유라고 설명한다. 바로 그 순간 어떠한 이유도 자신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찾아오는 환희를 만끽한다. 마크 롤랜즈는 유려한 문체를 통해 외부에 목적이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하는 후보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풀어낸다. 목적을 따라 논리적 결론을 내리다 보면 계속해서 삶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삶의 진짜 가치, 즉 삶의 의미의 후보가 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한다면 목적이 없는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달리기가 자극하는 매력적인 명상이 진솔하고도 열정적이며 위트 넘치는 그의 회고록에 실려 펼쳐진다. 저자 특유의 유쾌하고 감각적인 문장을 통해 달리며 느끼는 자유가 허물어져 가는 육신에 환희의 세계를 선물하는 과정을 함께해 보자. 이 환희의 세계는 중년의 철학자가 달리며 깨달은 삶과 죽음, 나이 듦과 자유가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성찰의 세계이다.
저자
마크 롤랜즈
출판
유노책주
출판일
2022.10.13

 

철학자가 달리기를 통해 배운 것들 

  저자인 마크 롤렌즈는 철학자로, 본인이 키우던 늑대와 개들과 달린 경험과 마라톤 완주 경험 등의 달리기 경험을 바탕으로 달리기를 철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처음엔 과연 학창 시절 배웠던 철학적 개념들과 달리기가 연결될지 의문이었다. 철학은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따라가는 과정인데, 어떤 식으로 저자가 달리기를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달리기'는 단순히 유산소 운동이나 팔과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 특정 거리를 이동하는 방법이 아닌, 보다 더 심오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장거리 달리기의 자유를 스피노자의 자유보다는 '데카르트의 자유'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정신·이성·영혼이 육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고 이야기하며, '심신이원론'을 주장했다. 이와 달리 스피노자는 뇌를 포함한 육체가 모두 하나의 물질이라는 '심신일원론'을 주장했다. 장거리를 달리다 보면 '여기까지만 뛰고 멈출까?', '저기까지만 뛰고 좀 걸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러한 생각이 드는 순간, 약한 것은 육체이고 꾸준히 달려 나가는 것은 육체를 속이고 설득하는 정신의 능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의 정신이 육체를 설득해서 계속 뛰게 만들기 때문에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있다는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이 '장거리 달리기의 자유'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사회탐구를 통해 심신이원론과 심신일원론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이었다.

 

  또한 저자는 본인이 달리기를 통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성취의 허무함이라고 말한다. 장거리 달리기의 핵심은 열심히 하면 성취할 수 있는 합리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인데, 어떤 가치가 있는 성취도 성취하는 순간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고 말한다. 목표를 성취했던 순간이 있는가? 나 또한 작년에 그간 염원했던 풀코스 마라톤 완주를 성취했는데, 잠실종합운동장의 피니쉬라인을 넘는 순간 그 의미를 상실하였다. 주로에 있던 3시간 48분 동안의 과정, 그리고 육체를 설득해 계속 뛰게 만든 나의 정신력은 남았지만 다 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뭔가 허무했다. 이러한 허무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책 후반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42.195km, 삶의 의미와 목적이 멈추는 곳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외부에 목적이 없어야 하고, 다른 것의 수단으로는 소용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소용이 없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가치의 필수 조건이다. 만약 무언가의 가치가 다른 어떤 것을 위한 유용성의 문제라면,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그 다른 어떤 것이 된다.  

 

  저자는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되기 위한 조건을 위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42.195km 를 달리는 것이 왜 중요할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바로 묘미이다. 삶에서의 가치가 의미나 목적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삶에서 의미 있는 것을 찾을 수 없게 만든다. 예를 들면 건강해지기 위해서 42.195km를 뛰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은 건강이 된다. 건강하고 싶은 것은 아프지 않기 위해서이고, 오래 살기 위함이다. 즉 거슬러 올라가 보면 현존재의 존재가능성(삶)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외부에 목적이 있는 것은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목적을 따라가다보면 나타나는 것은 '삶(현존재의 존재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치 있는 것들이 있는 곳은 삶의 의미와 목적이 멈추는 곳(없는 것)인데, 풀코스 42.195km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달리기의 목적과 가치는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즉 달리기의 목적과 가치는 그저 달리는 것이기에,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다. 

 


모든 달리기에는 고유의 심장박동이 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어제의 달리기와 오늘의 달리기는 다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달리더라도 매 달리기마다 고유의 심장박동이 있다. 그것이 사람들을 달리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달리기는 사유가 들어오는 열린 공간이다. 나는 생각을 하려고 달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달릴 때 사유가 들어온다.
사유는 추가적인 보너스나 대가처럼 달리기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유는 달리기, 그것도 진정한 달리기의 일부이다.
내 육체가 달릴 때 나의 사유도 내 장비나 선택과는 거의 무관한 방식으로 함께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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